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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고객을 자산으로 식별, ‘고객 문맹’ 현상 막아준다

2024.04.01 77

  • 고객제표, ‘고객 중심 경영’의 키

  • 외형에 치중하는 재무제표 보완

  • 고객 집단별 상태 파악하는

  • 성과평가 시스템에 주목해야


재무제표는 회계기간 기업 경영활동의 결과를 재무적인 관점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성과 평가 시스템이다. 그러나 성과에 이르는 과정이나 질적인 수준을 무시한 채 경영활동의 최종 결과만을 보여준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다 보니 ‘제품 중심’의 규모의 경제보다는 ‘고객 중심’의 범위의 경제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점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렇게 기업이 결과에 매몰돼 자사 고객이 누구인지 모르는 ‘고객 문맹’ 상태에 빠지게 되면 타깃 마케팅은 요원해지고 값비싼 매체 광고에 의존하게 되며 이탈 고객이 많아지는 줄도 모른 채 신규 고객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이른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영업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출현한 고객제표는 고객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기업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재무제표와 유사한 틀을 차용해 대외적으로 검증된 자산가치 평가 체계를 따르면서도 재무제표에 익숙한 경영자와 이해관계자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도구는 고객을 회사가 보유한 현금이나 재고자산처럼 측정한다. ‘자산으로서 고객’을 측정하는 것이 진정한 고객 관리와 고객 중심 경영을 위한 첫발이라는 게 고객제표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국내 연구진의 설명이다.

고객을 핵심 자산으로

예를 들어, 소비재 제조업 회사 C사와 F사의 실적은 2018년 재무제표 기준으로 봤을 때 각각 연 매출 2200억 원, 2500억 원과 영업이익률 6.5%, 5.8%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면서 두 회사의 명암은 극명히 엇갈렸다. C사는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 2023년 재무제표 기준 연 매출이 4000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고 영업이익률도 8.1%로 대폭 늘어난 반면, F사의 성장은 정체돼 연 매출이 2000억 원대에 머물고 영업이익률은 4.3%로 악화된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재무제표에는 코로나 한파를 거치며 C사와 F사의 실적 격차가 왜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2018년 고객 분석 지표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두 회사 간에 분명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바로 ‘고객의 특성’이 달랐다. 2018년 총매출은 같았지만 전체 매출 가운데 멤버십 등에 가입하거나 제품 구매 시 본인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식별고객’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C사는 40%가 넘었지만, F사는 20%도 채 안 됐다. 다시 말해, 이름도 모르고 자취도 남기지 않는 익명의 고객보다는 우리 회사와의 접점에 자주 찾아와 자신의 정보를 기꺼이 넘길 정도로 충성도 있는 고객의 매출 기여도가 높은 기업이 위기에 강했다는 의미다. 이는 C사가 2016년부터 자사 몰 운영을 통해 부지런히 소비자들을 자사 고객으로 전환한 반면, F사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유통 채널에 의존하는 납품 위주의 영업을 고수한 결과라는 게 두 회사를 살펴본 교수들의 분석이다.



‘식별고객’은 자본, ‘비식별 고객’은 부채

이처럼 매출액이나 영업이익률 같은 외적 성과지표에 보이지 않는 고객의 특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지표들을 반영한 게 바로 고객제표다. 고객제표는 식별 가능한 고객은 진정한 고객에 가깝다는 뜻에서 ‘자본’으로, 식별 불가능한 고객은 언제든지 타사로 이동해 떠날 수 있는 임시 고객이란 뜻에서 ‘부채’로 분류한 뒤 그 구성 및 증감, 변동을 추적한다. 이현석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재무제표는 기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지만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이유나 숨은 문제 영역을 진단하지는 못한다”면서 “기업 성과와 직결되는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신규 고객 수 추이나 고객 이탈률 등을 바탕으로 기업의 중장기 성장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고객제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F사가 일찌감치 경쟁사 대비 식별고객의 매출 비율이 저조하다는 징후를 사전에 충분히 인지했다면 더 빨리 위기에 대비하고 충성 고객을 늘릴 대책을 마련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고객 관점에서 경영 성과를 평가하려는 시도 자체가 국내외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 로버트 캐플런 하버드대 교수와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노턴 박사가 재무성과 지표들이 현대 경영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BSC(균형성과표)라는 평가 도구를 개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대부분 설문조사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응답자 편향이나 척도의 한계로 해석이 어려웠다. 이후 고객관계관리 분야에서도 고객이 얼마나 최근에 구매했고, 자주 방문했고, 돈을 지불했는지 등에 따라 고객 행동을 분석하는 RFM(Recency, Frequency, Monetary)과 고객생애가치를 평가하는 CLV(Customer Lifetime Value) 등의 고객 경영 성과 지표가 나왔지만, 이들 역시 대개 실무에서 지엽적으로 활용되는 데 그쳤다.

이에 반해 고객제표는 기존에 개별적으로 수행되던 고객 분석을 체계적이고 통합된 경영 평가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첫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위원들의 평가다. 양성병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는 “향후 업종별, 기업별 적용 가능성을 면밀히 평가해 타당성과 유효성이 더욱 확실히 검증된다면 기업들의 고객 경영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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